(스페인어: Frida Kahlo de Rivera, 1907년 7월 6일 ~ 1954년 7월 13일/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짙은 검은색 눈썹이 거의 일자로 붙어있고, 수염까지 거뭇한 남성성이 느껴지는 개성적인 초상화로 유명한 프리다 칼로. 출생 시의 이름은 마그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이 칼데론(스페인어: Magdalena Carmen Frieda Kahlo y Calderón)이며,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후에는 주로 프리다 칼로로 불렸다.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났고 스탈린주의자인 아버지와 평화주의자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서는 멕시코의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의 토속 문화를 결합시킨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활발한 공산주의 지지자로서 10월 혁명의 주역이었으며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도자였던 트로츠키와도 인연이 있었다. 결혼은 1925년에 멕시코의 화가이자, 혁명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했다. 디에고는 프리다보다 21살 연상이었고, 여성편력도 잔인할 정도였다. 그녀는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사춘기때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큰 사고를 겪어 2년 가까이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이사고로 이후 35차례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사고의 후유증이 커서 그녀 평생 아이를 원했지만 모두 유산하고 말았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래에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에 첨부된 순대로 <헨리포드 병원>, <Still Life> <Pitahayas>, <두명의 프리다> 등이 있다.
프리다는 1954년 7월 13일 폐렴이 재발하여 사망하였다.그녀는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디에고의 아내가 아닌 화가 프리다 칼로로서 비상했다.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이 컸다. 당시 뉴욕에서는 칼로 열풍이 불었다. 그녀는 이후 남편 디에고와 함께 멕시코 지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멕시코 시티에 가면 casa azul 이라는 프리다 칼로의 생가가 있고, 작품전시도 상시 이루어지고 있다. 제일 마지막 그림은 프리다의 얼굴이 있는 멕시코 우표이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뿐”_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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